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MZ 세대가 열광하는 현실적 명언을 남긴 개그맨 박명수가 자신을 롤모델 삼지 말라고 조언했습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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올해 53세인 박명수는 32년 차 코미디언입니다. 어린 시절, 아버지가 화물 트럭을 운전해 생계를 꾸렸다고 밝힌 그는 “가난하진 않았지만, 여유 있는 형편도 아니었다”고 털어놨죠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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‘집안을 일으켜 세우겠다’는 포부를 갖게 된 박명수는 남다른 비주얼로 1993년 MBC 공채 4기 개그맨에 합격했는데요. 방청객 하던 중 한 PD의 눈에 띄어 연예 활동을 시작하게 됐습니다.
절실함이 무기
개그 밖에 길이 없었다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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데뷔와 동시에 얼굴을 알렸지만, 무기력하게 쉬는 날이 더 많았다고 합니다. 그는 나이트클럽에 출근해 개근 도장을 찍으며 성실성을 증명했죠. 지금까지도 일주일 이상 쉰 적이 없다고 하는데요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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어머니가 적금 깨 해준 쌍꺼풀 수술로 자신감이 붙었던 박명수는 1994년 아이스크림 광고비로 2,000만원을 벌었고, 이를 1만원 지폐로 전부 교환해 아버지에게 드렸습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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박명수는 “나는 개그밖에 할 줄 아는 게 없어서 미친 듯 매달리고 버텼다”고 밝혔습니다. 개그계 대부 이경규는 “박명수 실력은 모르겠지만, 이 바닥에 계속 있을 줄 알았다”고 말했죠.
호통 개그 향한 대중의 시선,
세상이 변했다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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박명수는 거친 말투와 냉소적 발언으로 ‘비호감’에 등극했던 개그맨입니다. 대표 개그만 봐도 ‘우이쒸!’ ‘야야야!’ 등 호통치는 모습이 많았죠. 하지만, 10년이 지나자 그의 말은 명언이 되고 어록으로 남았습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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MZ가 열광한 명언을 꼽아보면 ‘티끌 모아 티끌’ ‘가는 말이 고우면 얕본다’ ‘꿈은 없고 그냥 놀고 싶습니다’ 등이죠. 이런 분위기 반전에 대해 박명수는 “나는 가만히 있었는데, 세상이 변했다”고 표현했는데요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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“아직 한계에 부딪힌 적 없다”는 박명수의 도전은 지금도 진행 중입니다. 코미디부터 가수, 사업가, DJ 활동까지 장르도 다양하죠. 그는 피땀 흘려 얻는 경험의 가치를 강조하며 청춘들이 꿈과 목표를 향해 나아가길 응원했습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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