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2005년 KBS 특채 20기로 데뷔한 코미디언 윤형빈은 2000년대 후반 ‘왕비호’ 캐릭터로 큰 인기를 끌었는데요.
어느덧 데뷔 20년차의 베테랑 연예인인 그의 이름이 가명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이들이 사실 많지 않습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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윤형빈의 본명은 무엇인고 하니 바로 윤성호. 굳이 가명을 사용할 이유는 없을 것 같은 평범한 이름임에도 그가 예명을 사용한 이유는 바로 자신보다 먼저 데뷔한 동명의 선배가 있었기 때문입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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2001년 SBS 공채 6기 코미디언으로 데뷔한 윤성호는 KBS로 건너와 개그콘서트에서 활약, ‘빡구’ 캐릭터로 인기를 끌었는데요. 자신의 트레이드 마크인 민머리를 이용해 ‘일진 스님’, 최근에는 ‘뉴진 스님’으로 활약하며 제2의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습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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2000년대 초반 연극, 뮤지컬 배우로 활동한 이력이 있는 윤형빈은 선배인 윤성호와의 혼선을 피하기 위해 아마추어 시절부터 일찌감치 윤형빈이라는 예명을 사용했으며, 덕분에 두 사람은 각각의 재능과 매력으로 대중에게 어필하며 성공할 수 있었습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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윤형빈은 2006년부터 공개연애를 이어온 동기 코미디언 정경미와 7년여의 열애 끝 2013년 결혼해 1남 1녀를 두고 있으며, 현재는 후배들을 양성하기 위해 홍대에서 자신의 이름을 내건 소극장을 운영하고 있는데요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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절친인 변기수는 윤형빈이 ‘갈갈이 패밀리’처럼 후배들을 위해 극장을 만들고 무대부터 음향, 좌석, 쾌적한 휴식공간까지 만들어주는 것을 물론 후배들 밥까지 사먹이며 서포트하고 있다고 칭찬했습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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코미디언들이 항상 외진 곳에서 활동하는 것이 안타까워 일부러 홍대를 선택했으며, 객석 의자도 일부러 예술의 전당에 버금가는 의자로 설치했다고 설명한 윤형빈. 하지만 안타깝게도 코로나19로 타격을 받을 수 밖에 없었다고요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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이에 변기수는 윤형빈이 그럼에도 꿋꿋이 극장을 지킬 수 있는 것에 대해 (아내인) 정경미가 홈쇼핑에서 물건을 팔고, 라디오 DJ 등으로 수익 “와이프를 길거리로 내몰았다”라고 모함해 웃음을 유발했습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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하지만 해당 발언은 농담이고, 실제로 윤형빈 곁에 정경미가 있었기 때문에 윤형빈이 포기하지 않고 후배들을 양성했으며, 개그콘서트가 다시 부활하는 데 큰 공을 세웠다며 훈훈하게 마무리했습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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